스님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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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다례재] '무위당 진관스님 추모 다례재' 법문
종범스님 2019-07-01
示寂之後 三週之辰 進供法香 飽滿飽滿시적지후 삼주지진 진공법향 포만포만 진관스님 진관스님 법향을 가득히 받으십시오. 법향을 가득히 받으십시오.眞樂이本有거늘 失而不知하고 妄苦가本空이어늘 得而不覺이로다진락본유 실이부지 망고본공 득이불각(淸凉華嚴經疏鈔청량화엄소초 권2의2, 43장하)나무아미타불 화엄종주 청량화엄소초의 경인데, 역대의 많은 큰스님들이 하신 부분이에요. 眞樂이本有(진락본유)거늘, 일체중생에게 참된 즐거움(眞樂 참 진자, 즐거운 락자), 참된 진락이 本有(본유), 본래 있거늘, 失而不知(실이부지)하고, 그걸 잃어버려서 알지 못하고, 妄苦가本空(망고본공)이어늘, 허망한 고통이 본래 공했거늘, 得而不覺(득이불각)이라, 그걸 얻어서 망고가 본래 공함을 깨닫지 못하는구나. 역대로 큰스님들이 하신 법문입니다. 蛇福母死 元曉 臨尸祝曰사복모사 원효 임시축왈莫生兮其死也苦요 莫死兮其生也苦니라막생혜기사야고 막사혜기생야고 福曰詞煩 更之曰 死生苦兮 복왈사번 갱지왈 사생고혜(三國遺事 제4권, 蛇福不言章 삼국유사 제4권, 사복불언장) 삼국유사 사복장에 보면, 사복동자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원효선사를 찾아가서 “우리 어머니한테 법문을 좀 해주십시오.”하니까, “좋다.”하고, 사복어머니 영가앞에 가서 “莫生兮(막생애), 태어나지 말아라, 其死也苦(기사야고), 죽는 것이 고통이요, 莫死兮(막사혜), 죽지말아라, 其生也苦(기생야고)니라, 나는 것이 고통이니라.” 그러니까 옆에 있던 사복동자가 曰(왈), 말하기를, “詞煩(사번)이라, 말이 너무 번거로워, 말이 너무 많습니다.”라는 뜻이에요. 그리고 更之曰(갱지왈), 고쳐서 말하기를, “死生이苦兮라(사생고해), 죽고 나는 것이 고통이다.” 그 기록이 삼국유사에 그대로 실려 있는데, 이 법문도 많은 큰스님들이 하신 법문이에요. 통도사 경봉큰스님께서도 영가 법문할 때 이 법문을 자주자주 하셨어요. 사생이 고해라, 나고 죽는 것이 고통이다. 거기에 오늘 법사가 한 말씀을 붙인다면, 一念이忽起에 生死苦惱하고 一念이不起에 寂滅常樂이로다일념홀기 생사고뇌 일념불기 적멸상락나무아미타불생사가 고통인데, 생사가 어디서 왔느냐, 생사가 온 곳이 어디냐, 이 말이죠. 생사는 한 생각이다. 一念이忽起에(일념홀기), 한 생각이 홀연히 일어남에, 生死苦惱(생사고뇌)하고, 생사고뇌가 끝이 없고, 一念이不起에(일념불기), 한 생각이 일어나지 아니함에, 寂滅이요常樂이다(적멸상락),적멸이요 상락이다. 한 생각이 안 일어나면 생사는 없다. 생사 없는 것을 적멸이라고 하고, 생사를 생멸이라고 해요. 그래서 생멸은 연기, 생각이 일어날 때 생겨요. 일념불기, 한 생각이 일어나지 아니하면, 생멸도 없고, 고통도 없고, 상락이다. 적멸상락. 그런데 경에서는, 생멸, 斷滅(단멸), 적멸 그렇게 얘기하는데, 생멸은 나고 죽고, 나고 죽고 하는 것이고, 단멸은 딱 끊어져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것이고, 적멸은 색즉시공이요 공즉시색이라(色卽是空 空卽是色), 性空不生(성공불생), 본성이 공해서 나지 않고, 性空不滅(성공불멸), 본성이 공해서 죽지 않는 게 그게 적멸이다 라는 얘기예요. 한 생각이 일어나지 않으면 적멸이요, 상락이다. 생사고뇌가 적멸상락이 된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이 중생이 이미 한 생각을 일으켜서 생멸을 받는 고뇌에서 적멸상락으로 돌아갈 수 있느냐. 적멸상락을 얻는 방법은 뭐냐. 그게 오늘 법문인데요. 心不妄取過去法 亦不貪着未來事심불망취과거법 역불탐착미래사不於現在有所住하면 了達三世가悉空寂이로다불어현재유소주 요달삼세실공적(華嚴經, 十廻向品제25)나무아미타불 예참헌공예불에 늘 하는 법문이데, 화엄경 십회향품에 있는 법문이에요. 이미 일어난 한 생각을 어떻게 하면 종결심으로 돌려서 상락을 항상 받을 것인가. 땅에서 넘어진 자는 땅을 짚고 일어나듯이, 한 생각이 일어나서 생사가 있다면 한 생각을 돌이키면 생사는 없다, 이건데요. 한 생각을 돌이키는 방법이 뭐냐. 心不妄取過去法(심불망취과거법)하고, 마음으로 허망 되게 과거법을 자꾸 생각하지 말고(취할 취자는 생각한다는 뜻이에요). 일체중생이 과거법을 생각하다가 세월이 다 가요. 과거는 이미 현재가 다 됐는데, 내 생각 속에서만 현재가 되지 아니한 과거가 있는 거예요. 내가 옛날에는 어린아이였다. 그럼 그 어린아이는 어디로 갔는가. 옛날의 어린아이가 어디로 간 게 아니라 현재의 내가 된 거예요. 그래서 현재는 다 과거에서 왔기 때문에 과거는 다 현재가 되었다. 그런데 과거가 다 어디 들었는가. 중생의 기억 속에는 과거가 남아있어요. 그런데 과거 생각하다가 생사가 계속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허망 되게 과거법을 생각하지 말고. 亦不貪着未來事(역불탐착미래사)하고, 또한 미래사도 탐하여 집착하지 말고. 미래는 뭐냐. 현재가 그대로 미래가 되는데, 현재가 청정하면 미래가 청정하고, 현재가 혼란하면 미래도 혼란하고, 과거는 현재가 되고, 현재는 미래가 되기 때문에, 미래는 현재를 떠나서 따로 없다. 그런데 중생은 미래를 걱정하다가 세월이 가요. 이게 전부 다 망상이고 집착이다 이거죠. 不於現在有所住(불어현재유소주)하면, 현재 있는 바에 또 얽매이지 않으면, 현재는 현재에요.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고. 있는 그대로 현재란 말이에요. 거기서 자꾸 취사선택을 해요. 그게 머물 주자인데, 머물 주자는 종종취사(種種取捨)라, 가지가지로 취하고 버리고, 취하고 버리고. 원각경에는 종종취사는 개시윤회(皆是輪廻)라, 하나 취했다가 금방 하나 버리고, 취하고 버리는 게 계속 반복되니까 자동차 바퀴 돌듯이 계속 되풀이된다 말이에요. 그런데 현재 취하고 버리는 일을 하지 아니하면, 了達三世가悉空寂(요달삼세실공적)이라, 과거, 현재, 미래가 다 적멸실상임을 요달, 알게 되리라. 이거거든요. 그러니까 과거도 생각하지 않고, 미래도 생각하지 않고, 현재에 집착하지 않는 것을 관조(觀照)라고 해요. 다 보고 비춘다. 비추고 본다. 그렇지 아니하고 과거 생각하고, 미래 생각하고, 현재 집착하는 것을 번뇌라고 하거든요. 관조를 하면, 과거를 생각하지 않고, 마래를 생각하지 않고, 현재도 집착을 하지 않으면 조용해지고, 조금 더 들어가면 경계가 텅 비어있어요. 경계는 나의 대상인데, 이 안이비설신의에서 마지막에 있는 색성향미촉법 온갖 육근 대상 경계가 적멸법때문에, 고요한 법이 없어요. 산에는 산이 없고, 산이라는 분별심이 사라지니까 산이 없어. 하늘에는 하늘이 없고, 하늘이라는 분별심이 사라지니까 하늘에 하늘이 없고. 몸이라는 분별심이 사라지니까 몸에 몸이 없다. 경계가 적멸해지고, 경계가 적멸해지면 그 적멸한 경계를 보는 마음이 적멸해지고. 이걸 경공심공(境空心空)이라고 해요. 경계가 공하고 마음이 공하다. 이 경공심공이 떡 되면 뭐가 나오는가. 이게 요달 인데, 과거현재미래가 이게 생사요, 이게 만법인데, 이 생사만법이 정을 하게 된다 말이에요. 이게 요달삼세가 실공덕이라. 이 적멸까지 들어가는 것을 정극(깨끗할 정자, 지극할 극자 淨極), 깨끗함이 극치에 오른다 이 말이죠. 조적이라(照寂, 비출 조자, 고요할 적자), 비추고 비추어서 비추는 지혜가 고요한 데까지 도달했다. 이걸 등각(等覺, 같을 등자, 깨달을 각자)이라고 해요. 등각은 조적, 비추어서 고요한 데 들어간 상태를 등각이라고 하거든요. 정극, 그 청명함이 극에 도달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조적, 정극에 들어가느냐? 일체 만물이 다 사라지는 경지인데, 불과 마가 있어요. 불은 뭐고 마는 뭐냐. 불과 마가 별종자가 아니라, 분별은 마요, 분별하는 것은 모두 마라고 하거든요. 不分別(불분별)은 佛(불)이라, 분별하지 않는 것을 불이라 한다. 화엄경 이세간품에서 자세히 가르치는 법문인데. 이 등각의 경지가 되면, 조적의 경지, 정각의 경지가 되면 십종마(十種魔) 항복을 해요. 십종마, 열가지 종류의 마인데, 십종마에 어떤 거까지 들어가는가 하면, 삼매마가 있어요. 삼매도 청정이 극한데 들어가면 마예요. 분별이요. 왜냐. 삼매는 탐미요라, 삼매의 고요한 맛을 탐하게 되요. 이게 삼매마(三昧魔)에요. 정극에는 삼매가 없어요. 그냥 청정이 극할 뿐이에요. 그 다음에 선지식마(善知識魔), 선지식도 마가 되요. 그리고 공부한 사람들 보면, 자기 삼매자랑 엄청나게 하고, 선지식 자랑 엄청나게 한대요. 전부 마구니에요. 정극에 못 들어갔어요. 청정의 극치에 못 들어가요. 삼매마, 선지식마. 또 보리마(菩提魔)가 있어요. 보리, 보리하면서 보리에 자꾸 집착하고, 보리에 분별하면 다 마에요. 그 외도 10가지니까 많겠죠. 선교마(善巧魔), 좋은 방편으로 선근공덕 짓는다고 자꾸 분별하면 그것도 정극, 등각 경지에서 다 마에요. 거기는 나쁜 것도 없지만 좋은 것도 하나도 없어요. 비춤이 고요한 조적이 되고, 청정이 극치에 오르는 정극이다. 이 경지에 들어가면 삼세가 다 공적한데, 공적한 것을 금강삼매(金剛三昧)라고 해요. 금강삼매는 일체를 다 부수는 거예요. 금강삼매는 조적무방(照寂無方)이라, 고요히 비추는 것이 이 방소가 있고 저 방소가 있는데, 방소가 하나도 없이 그냥 고요하게 비출 뿐이에요. 그 경지가 되면, 정극하면 광통을 해요. 빛이 확 나타나. 그걸 시성정각(始成正覺)이라고 해요. 고요함이 극에 달하고, 청정함이 극에 달하면 능엄경에서 말하는 정극광통(淨極光通, 빛 광자, 통할 통자)이다. 그것을 시성정각이라고 한다, 처음으로 정각을 이뤘다. 시성정각이 조금 깊어지면, 본각(本覺)이 되요, 본래 깨달음과 같이 되요. 본각이 더 싶어지면 원각(圓覺)이 되요. 이게 공부하는 과정이에요. 역대선지식이 다 이 길로 공부하신 거예요. 처음에는 마음을 거둬서 고요히 관조를 하고, 그 다음에는 삼세를 공해지고, 생각이 공해지고, 그 다음에 시각을 이루고, 시각이 본각이 되고, 본각이 깊어져서 원각이 된다. 시각, 본각, 원각을 합쳐서 묘각(妙覺) 이라고 한다 이 말이에요. 묘각은 어떻게 되냐. 一切種智(일체종지)에, 다 원만구족한게 묘각이에요, 일체 종류의 지혜. 등각은 일체청정이고, 일체종류의 지혜를 묘각이라고 한다. 일체종지가 되면, 一切境界(일체경계)에 無住自在(무주자재)라, 일체경계에 머무는 곳이 없어. 분별하고 머무는 것이 생사에요. 무분별, 무주착이면 일체종지가 일체경계에 무주자재하는 것이다. 진관스님도 이 길로 가셔야 되고, 일체 중생도 이 길로 가야되고, 천하선지식이 다 이 길로 가는 거예요. 앞에 가는 사람이나 뒤에 가는 사람이나 가는 곳이 전혀 둘이 아니에요. 이것을 한문으로 한 번 더 읽어보면, 金剛三昧의 照寂이無方하고 海印三昧의 寂照가遍照하니금강삼매 조적무방 해인삼매 적조변조妙覺智用의 一切種智가 一切境界에 無住自在로다 묘각지용 일체종지 일체경계 무주자재 나무아미타불 금강삼매를 말하는데 금강삼매는 등각삼매고, 해인삼매를 말하는데 해인삼매는 묘각삼매다. 일체종지를 이루어서 모든 것이 다 드러나서 일체를 두루 비추는 게 해인삼매예요. 그래서 金剛三昧(금강삼매)의 照寂이無方(조적무방)하고, 금강삼매는 조적인데, 조적이 여기 있고 저기 있고 하는 방소가 없이 항상 조적이 무방이다. 海印三昧(해인삼매)의 寂照가遍照(적조변조)하니, 해인삼매는 조적이 아니라 적조라고 해요. 고요한 상태로서 밖으로 비추는 걸 적조라고 해요, 비추어진 상태로 고요히 들어가는 것을 조적이라고 해요. 이게 경론소초에 다 있는 말이에요. 종범이 지어내는 말 한자 한 톨도 없어요. 적조해인 조적금강. 공부라는 게 갈수록 깊어지고 갈수록 태산이에요. 적조가 두루 다 비춘다는 거예요. 바다에 온갖 그림자가 다 비추듯이, 그러니 妙覺智用(묘각지용)의, 묘각지혜 작용의 一切種智(일체종지)가, 일체 종류의 지혜가 一切境界(일체 경계)에 온갖 경계에 無住自在(무주자재)라, 머뭄이 없이 자재한다. 오늘 법공양을 받으시는 진관스님이나 법공양을 올려드리는 우리 모든 대중이나 다 이리로 가는 거예요. 앞 부처나 뒤 부처나 다른 길이 없어요. 경을 보면, 경문,논주 등이 다 이런 공부과정을 거쳐서 논서를 지었지, 이런 묘각삼매를 얻지 못하고 논서 지은 사람은 없어요. 그럼 그 분들은 어떻게 경을 봤길래 이런 묘각삼매를 얻었나. 경을 보다보면 손으로 만질 수 있는 文字經(문자경)이 있어요. 거기서 조금 들어가 보면 觀照經(관조경)이 있어요. 문자 없이 마음으로 보는 관조경이 있다. 관조경에서 더 깊어지면 해인삼매 寂照經(적조대경)에 들어가요. 그걸 實相經(실상경)이라고 해요. 이 3가지 경을 보는 거예요. 첫 번째 문자경은 文解(문해)로 간경하고, 문장을 해석하는 것으로 경을 보고. 경을 배우다 보면 문장 해석이 아주.. 초입관문이에요, 처음 들어가는 관문이에요. 문장해석이 안되면 문자경을 볼 수가 있어야지... 그래서 문자경은 문해(문장해석)로 간경(경을 봄)하고. 그다음, 관조경은 관조로 간경하고, 관조로 경을 보는 거예요. 마음은 과거도 생각하지 않고 미래도 생각하지 않고, 현재를 분별하지 않고, 딱 보기만 하되 생각이 없다. 보는 것은 눈을 감는다는 게 아니에요, 그냥 본다. 照(조)는 생각을 안 하는 거예요. 이게 관조예요. 그러면 경계도 공해지고, 내 마음도 공해지고 照寂(조적)경지에 들어가게 되요. 비춰서 고요한 상태에 들어가요. 더 들어가면 지혜광명이 확 나오는데, 그것을 正覺(정각)이라고 한다. 정각을 하면 지금까지의 분별방식이 전부 지혜가 되는데, 지혜를 圓滿報身(원만보신)이라고 해요. 깨달음의 보답으로 얻은 몸이 지혜의 몸인데 그걸 보신이라고 해요. 절에 가면 대웅전, 대광보전, 대덕전, 전부 그게 보신을 말하는 거예요. 청정법신은 없는 데가 없고, 백억화신은 인연 따라 오고가고 하고. 그렇게 경을 보는 거예요. 문자경은 문해로 보고, 관조경은 관조로 보고, 그리고 실상경은 證得(증득)한 지혜로 봐요. 실상은 證分(증분)이에요. 증득한 분야에요. 증지(증득한 지혜)로 본다. 설법은 敎分(교분)이에요. 敎說(교설)의 분야에요. 증분이 없으면 교분이 안 나와요. 그래서 경론 종사들이 자기 실상을 증득한 경지가 없으면 경론소초가 나올 수가 없어요. 그럼 학인들이 어떡하면 되냐. 처음에는 문장해석으로 문자경을 보고, 그 다음에는 관조정진으로 관조경을 보고, 그 다음에는 증득한 지혜로서 실상경을 보면, 문자경, 관조경, 실상경을 원만구족하게 다 봐서, 문자가 관조요 실상이요, 실상이 관조요, 이게 전부 셋이 하나요, 하나가 셋이고. 이 경지가 공부입니다. 이제 법문이 다 끝났는데, 왜 이리 조금 허전해요. 그래서 마지막으로 한 말씀 더 붙이는 거예요. 無上妙覺은 然之然之나 入道初心을 切須不忘이며무상묘각 연지연지 입도초심 절수불망百年生涯가 一夜困夢이니 永脫孤貧하고 親得眞樂이면백년생애 일야곤몽 영탈고빈 친득진락放下皮囊하고 一念返照로다 照看照看하면 古光이赫赫하나니라 방하피낭 일념반조 조간조간 고광혁혁나무아미타불 無上妙覺(무상묘각)이란 지금까지 설명한 등각묘각, 無上妙覺은 然之然之나, 그러하고 그러하다. 그런데 最正覺(최정각)은 어디서 왔는가? 초발심에서 왔다. 초발심을 무엇이 되느냐? 최정각이 된다. 발심 없는 정각이 없고, 정각 없는 발심이 없다. 이게 불교예요. 그러니까 入道初心(입도초심)을 切須不忘(절수불망)이며, 도에 들어간 처음 마음을 간절히 잊지말아야한다. 어떤 게 입도초심이냐. 첫째는 인생무상하고, 세상허망함을 관찰해야 되는데, 성공이 다 허망함으로 돌아가고, 인생이 다 무상함으로 돌아가는데, 이걸 못 느낀단 말이에요. 인생이 무상하고 성공이 허망해. 성공이 뭐냐. 새가 허공을 나는데, 조금 더 날려고, 날고 조금 더 날고, 조금 더 가면 앞이 조금 더 길게 보여 또 날고, 날다가 죽는 거예요. 성공에 집착하는 범부들이 새가 날다 죽듯이, 성공하다 죽어요. 죽고 나면 다 허망해. 나한테 김 빼는 소리 같다고. 그런데 인생무상과 성공 허망을 절실히 관찰하지 못하면 절대로 도에 들어갈 수가 없어요. 그래서 百年生涯(백년생애)가 一夜困夢(일야곤몽)이니, 백년생애가, 백년동안 사는 것이 하룻밤 노곤한 꿈이다. 금년생애가 일야곤몸이라, 그러면 어떡해 하느냐. 永脫孤貧(영탈고빈)하고, 고독과 빈곤을 영원히 해탈하고, 親得眞樂(친득진락)이면, 본래 가지고 있는 참된 즐거움을 얻으려고 한다면, 放下皮囊(방하피낭)하고, 방하는 내려놓는다는 말이에요. 피낭은 가죽 피, 주머니 낭, 가죽주머니인데, 선문어록에서는 우리 몸을 피낭, 가죽주머니라고 해요. 가죽으로 된 피부 안에 온갖 것 다 담고 있다고 피낭이라. 五蘊色身(오온색신) 인간육신을 가죽주머니, 피낭이라고 하는데, 이것에 집착해서 도를 못 닦아요. 몸에 대한 집착을 조금 내려놓고, 방하피낭을 하고, 一念을 返照(일념반조)하라, 한 생각을 일으키면, 생사여 한 생각을 일으키지 아니하면 적멸인데, 그 한 생각을 돌이켜봐라. 이게 일념반조거든요. 삼세제불이 전부 일념반조로 해탈했거든요. 일념반조가 없인 해탈이 안 돼요. 일념을 반조하라, 한 생각을 돌이켜봐라. 그래서 照看照看(조간조간)하면, 반조해보고, 반조해보면 古光이赫赫(고광혁혁)하나니라, 옛 광명이 빛나고 빛나느니라. 이게 입도초심이에요. 오늘 법문 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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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법회] 1만 배 정진 절 법회 입재
덕현스님 2019-06-30
6월 마지막 주 법회 소식 전해드립니다.6월 30일 진행된 [일요법회]는 '절 법회'로 진행이 되었습니다.매 달, 마지막 주 [일요법회]는 '절 법회'로 진행이 될 예정입니다. ^^(7월은 내부 일정 관계상 7월 21일에 진행됩니다.) 1만 배 정진을 향한 절 법회의 시작은덕현스님과 많은 신도님들이 함께 동참하시어 입재되었습니다.1만 배 정진 절 법회는 매 회 300배의 정진으로 진행 될 예정입니다.몸이 불편하시거나 절하시기가 힘드신 경우에는 법회 참석만 하셔도 되니 부담없이 참석하셔도 좋습니다.^^ 덕현스님께서는 절 수행의 효과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해 주셨습니다.'절을 하면 머리가 가장 낮은 바닥에 닿게 됩니다. 그러면 스스로를 낮추게 되며, 저절로 나 자신을 내려 놓게 됩니다. 절을 통해 내 마음속에 있는 여러가지 감정들을 마주하게 되며, 때로는 이유없이 눈물이 날 때도 있습니다.이렇듯 절 수행을 통하여 나 자신을 바로 보고, 닦게 되는 것입니다.우리 모두 꾸준한 절 수행을 통하여 마음을 닦아나갑시다.'많은 동참하시어 나 자신을 바로 닦는 기회 되시길 기원합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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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재] 6월 28일 49재 법문
종범 스님 2019-06-28
靈駕 至心諦廳 至心諦受영가 지심제청 지심제수我有一卷經(아유일권경)하니 不因紙墨成(불인지묵성)이로다展開無一字(전개무일자) 常放大光明(상방대광명)이로다나무아미타불 부처님이라고 하면 세 가지 몸을 가지고 있다. 첫째는 청정법신. 청정이란 말을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어느 곳에 있어도 전혀 변하고 바뀜이 없는 것을 청정이라고 해요. 변하고 바뀜이 없는 법의 몸이다. 그래서 청정법신을 가지고 계시는 분이 부처님이다. 또 원만보신이라, 원만보신은 원만하게 이루어진 보답으로 된 몸이라는 건데, 무슨 보답이냐. 부처님이 시성정각(始成正覺)을 할 때, 처음으로 바른 깨달음을 얻었을 때, 그 때 우리 생로병사, 사대색신에서 아미타불을 만났어요. 그게 깨달음이에요. 깨닫기 전에는 생로병사가 이 몸이었는데, 깨닫는 순간에 아미타불을 만났다. 아미타불은 무량수 무량광, 수명이 한량이 없고, 광명이 한량이 없는 무량수 무량광인데, 그걸 깨닫기 전에는 전혀 모르다가 깨닫는 순간에 각성일체지라, 깨달음으로 말미암아 일체지를 이룬다. 지혜로 얻어진 부처님이 아미타불이에요. 무량수불이고 무량광불이고. 지혜의 세계를 원만보신이라고 해요. 보답으로 얻은 몸이다. 무슨 보답이냐. 깨달음의 보답이다. 원만보신은 깨달은 순간에 나타난 거예요. 원만보신, 지혜광명. 원만보신은 지혜광명이에요. 그 지혜는 각성일체지, 깨달음으로 일체지를 이뤘다. 정각공덕으로, 바르게 깨달은 공덕으로 대지혜가 나타났다 이거거든요. 그래서 지혜광명 원만보신이 부처님이에요. 그 다음에는 자비원력으로 일어나는 부처님이다. 당신은 생로병사 중생의 몸에서 무량수불 무량광불 아미타불을 만났는데, 중생들은 아직까지 만나지 못하고, 아미타불을 가지고 있으면서 죽는 걸 걱정하니까,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냐. 서로 찾고, 자기 집에서 자기 집 찾는 어리석은 범부의 정신세계다, 이 말이지. 그런 중생들이 하나도 없이 당신과 같이 아미타불을 만날 때까지 자비와 원력으로 곳곳에 태어나서 중생을 제도하겠다, 이것이 천백억화신 석가모니불이에요. 인연이 있는 곳마다 나타나는 분이 석가모니불이고, 원만보신 노사나불은 깨달음을 통해서 나타나 거거든요.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은 무고무래역무주(無去無來亦無住)라, 가는 것도 없고 오는 것도 없고 머무는 것도 없는 적멸실상, 적멸하고 진실상 그대로 부처님이다 이거죠. 그래서 오늘 법문 처음이, 중생은 누구나 다 한권의 경이 있는데, 종이로 먹으로 된 것이 아니다. 展開無一字(전개무일자)라, 기술하고 기록하는 것은 하나도 없는데, 常放大光明(상방대광명)이라, 항상 대광명을 얻는다. 대광명을 비춘다. 눈으로 볼 때도 형태 없는 경이 나타나고, 귀로 들을 때도 문자 없는 경이 나타나는데, 오직 스스로 모를 뿐이다. 자기 집에 있는데, 꿈에 보면 꿈속에서는 자기를 전혀 모르는 것 같다고 해요. 꿈을 깼을 때 자기 집이 환히 보이는데. 꿈꾸다가 꿈 깬 그 공덕으로 자기 집을 만난 거예요. 그게 지혜광명신이고 원만보신이고. 지혜광명으로 중생의 모습을 보니까 어떠하더냐. 一切有爲法(일체유위법)이 오온 생멸법이如夢幻泡影(여몽환포영)이요 몽 환 포 영과 같고如露亦如電(여로역여전)이니 이슬 같고 번개 같으니應作如是觀(응작여시관)이로다 이렇게 봄이 마땅하다.나무아미타불 일체유위법은 생로병사인데, 지혜광명을 가지고 아미타불 눈으로, 무량수 무량광의 눈으로 생로병사 몸을 보니, 夢幻泡影(몽환포영)이라, 꿈같고, 꼭두각시 같고, 물거품 같고, 그림자 같고, 이게 한순간 사라지는 몸이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아미타불을 만나기 전에는 꿈같은 몸을 살아가는 거고, 꼭두각시 같은 몸을 살아가는 거고, 그림자 같은 몸을 살아간다. 如露亦如電(여로역여전)이라, 이슬과 같고 번개와 같다. 우리가 생로병사의 몸을 볼 때, 應作如是觀(응작여시관)이라, 이렇게 봄이 마땅하다. 무상한 것을 무상하지 않다고 보고, 허망한 것을 허망하지 않다고 보는 것이 중생의 소견인데, 그렇게 보면 못 깨닫는다 이 말이에요. 그러면 중생 속에 꿈같은 요소가 뭐냐. 과거는 여몽이라, 지나간 것은 다 꿈같아요. 환(幻)은 꼭두각시를 말하는데, 밖으로 펼쳐지는 세계가 다 꼭두각시와 같다. 꼭두각시라는 것은 성들에서 하는 건데, 성을 쌓아 그 위에 꼭두각시를 만들어 올려놓고 성의 담 밑에서 줄을 당기고 늦추고 하는 놀이를 꼭두각시놀이라고 해요. 세계를 가만히 보니까 전부 꼭두각시처럼 행동하는 게 있고 꼭두각시처럼 변화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다. 세계는 다 꼭두각시다. 금방 있다 금방 없어져요. 제가 지금 나이가 74인데요, 지난 50년 동안 어떤 경험이 있냐하면, 어릴 때는 사람들이 전부 신문을 봤어요. 신문꼭두각시. 그 다음에는 텔레비전을 많이 봤어요. 텔레비전 꼭두각시. 그 다음에는 컴퓨터를 많이 했어요. 그다음에는 인터넷을 했어요. 2009년까지 종이신문 구독률이 73%였는데, 2019년에는 10%라고 해요. 요즘 종이신문 읽는 사람은 문제가 많은 사람이에요(웃음). 요즘은 전부 스마트폰이에요. 스마트폰은 나의 인생이다. 스마트폰과 내 몸은 한 몸이다. 외국에서도 그렇고, 우리나라에서도 어떤 사람이 책으로 썼는데, 스마트폰을 자기 몸처럼 하나가 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을 <포노 사피엔스>라고 했어요. 포노는 스마트폰, 사피엔스는 인간. 스마트폰이 오장육부처럼 내 몸이 되었다. 스마트폰이 없으면 살 수가 없는 거예요. 이게 전부 꼭두각시처럼 변하는 거예요. 전에는 신문 안보면 알 수가 없었잖아요. 요즘은 스마트폰 없으면 알 수가 없는 거예요. 앞으로는 뭐가 나타날지 모르죠. 그걸 환이라고 해요. 그 다음에 물거품이란 무엇이냐. 감정, 좋아하고 싫어하는 건데, 얼마나 쉽게 변하는지, 물거품이 일어났다 사라지는 것처럼 금방 좋아했다 금방 싫어했다한다고. 좋고 나쁜 감정을 물거품에 비유한 거예요. 그림자는 뭐냐. 생각이에요. 그림자가 몸 따라 가듯이, 환경 따라서, 시골가면 생각이 시골스러워지고, 도시가면 생각이 도시스러워져서, 몸 따라다니는 그림자처럼 생각이 맨날 바뀐다. 그래서 생각을 그림자라고 해요. 몸이라는 것이 얼마나 금방 늙어서 금방 죽느냐, 먼 아미타불 무량수 세월에서 보면 아침이슬과 같다는 거죠. 이 몸이 태어나서 죽는 순간이 아침 이슬과 같다. 금방이에요. 젊은 사람들은 그 얘기하면 전혀 이해를 못 해요. 딴 나라얘기예요. 또 일평생이 번개와 같다. 세월이라는 것이 번개처럼 사라진다고 해요. 아미타불을 만나서 깨달은 지혜로 보니까 한 평생의 범부 일생이 그와 같더라. 이렇게 금강경에서 말씀하시는 거예요. 종이와 먹이 없는 중요한 경전 그거는 뭐냐. 如來者(여래자) 여래는無所從來(무소종래) 시작해서 온 데가 없고亦無所去(역무소거) 또한 가는 데가 없다.故名如來(고명여래) 그러므로 여래라 한다.(金剛經 금강경) 나무아미타불 대승불교에서 여래라고 하면, 법왕이라고 해요. 만법의 왕이다. 만법의 주인이다. 여래는 진리자체를 이른다. 법왕은 별명이라고 해요. 법성, 만법에는 본성이 있는데, 그 만법, 본성이 별명이다. 그리고 이 세상에는 삼제와 실제가 있는데, 삼제는 과거, 현재, 미래 3가지로 구분한다고 해서 삼제고, 실제는 진실한 세계를 실제라고 하거든요. 과거제, 현재제, 미래제가 없어요. 완전히 진실한 진여, 적멸, 실상. 진여, 적멸, 진실상을 실제. 과거, 현재, 미래는 삼제. 그것을 중도라고 해요. 동쪽에 속한 것도 아니고, 서쪽에 속한 것도 아니고, 과거에 속한 것도 아니고, 미래에 속한 것도 아니고. 그게 딱 실제 중도. 그런데, 여래라는 말은 법왕의 별명이요, 법성의 별명이요, 실제의 별명이요, 중도의 별명이다. 그것을 여래라고 해요. 여래십호중의 하나도 여래예요. 여래의 용례가 이렇게 광범위하게 형성됐어요. 이런 여래는 일체중생의 본래 몸인데, 위에는 부모에게 받아서 태어나서 죽는 몸도 있고, 부모에게 몸 받기 전도 있고, 몸을 가진 데도 있고, 몸을 버린 데도 있고, 본래 몸이 있다 이거예요. 그게 법성인데, 그걸 법왕이라고 그런다. 그 법왕법성여래자는 無所從來(무소종래)라, 고향이 어딘지, 주소가 어딘지 몰라요. 시작해서 온 데가 없어. 가는 곳도 없어요. 그러므로 여래라고 그런다. 이걸 눈으로 볼 때 지혜가 생기고, 그 지혜에서 생긴 것이 아미타불인거예요. 그게 원만보신이에요. 그 시작해서 오는 것도 없고, 가는 곳도 없는 그 청정법신의 세계를 극락세계라고 해요. 이 생로병사 근심걱정하다 가는 곳을 사바세계라고 해요. 생로병사가 있으면 사바세계고, 생로병사가 없으면 무량수 무량광 아미타불의 세계를 얻어서 살면 극락세계예요. 그럼 재는 왜 지내느냐. 생로병사 근심걱정 있는 세상에서 생로병사 근심걱정 없는 극락세계로 보내드리는 것을 재로써 모시는 거거든요. 그래서 생로병사 사바세계 법왕법성 극락세계. ‘법왕법성 극락세계로 속히 가시고 편안히 가셔서 만복을 누리소서.’ 하는 게 재를 올리는 참 뜻이죠. 諸佛智는 自在하야(제불지자재) 제불의 지혜는 자재하여三世에 無所礙하니(삼세무소애) 삼세에 장애가 없다.如是慧境界(여시혜경계)는 이러한 지혜의 경계는平等하야 如虛空(평등여허공)이로다. 평등하여 허공과 같다.(華嚴經問明品 화엄경문명품)나무아미타불 깨달음을 통해서 아미타불이 돼서 지혜광명을 가지고 살아갈 때 어떻게 사느냐. 장애가 없어요. 무장애. 해탈이라는 말도 쓰고, 무애라는 말도 써요. 해탈이란 죽고 사는데 매이지 않아요. 무량수명과 무량광명을 깨달음을 통해서 바로 얻었기 때문에 그래요. 그래서 무애해탈. 걸리는 건 매이는 거거든요. 목숨에 매이지도 않고, 눈앞에 펼쳐진 환경에 매이지도 않고, 뭘 얻으려고 하는데 매이지도 않고.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가만히 보면 이 몸이라는 것이 무엇이냐 하는 거에는 전혀 관심을 가질 수가 없고, 이 몸으로 무엇을 이룰 것이냐에만 관심이 많아요. 이 몸으로 무엇을 이룰 것이냐, 이루다 죽어요. 무엇을 이룰 것이냐에만 관심을 가지고 이 몸이 몇 년을 살다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아무도 몰라요. 그러니까 하다 죽고 하다 죽고. 구하다 죽고, 구하다 죽고. 이게 인생살이에요.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고 장래 희망과 목표는 많은데, ‘너 언제 죽을 건데?’ 물으면 ‘그 소리 왜 하는데’ 하며 기분 나빠해요. 왜 기분 나쁜가? 사는데 매인 거예요. 목숨이 사는 데 매여 있어. 죽는 건 다 싫어해요. 사람들이 다 똑같은 감정이에요. 그럼 스스로 죽는 사람은 왜 죽느냐. 죽는 게 더 좋아 보이니까 죽지, 안 좋아 보이면 안 죽어요. 그러니까 죽는 노력도 더 좋은 것으로 향하는 마음과 똑같은 거예요. 그렇다고 해서 죽으라는 건 절대 아니에요. 죽는 게 사는 것보다 더 힘들 거라는 확신이 있으면 안 죽어요. 죽는 게 적어도 이 고통은 면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죽는 거예요. 다 무엇을 이루고, 무엇을 구하고, 무엇을 하고자 하는 것은 똑같다. 그거거든요. 그래서 걸려있어요, 장애, 속박. 그게 사바세계예요. 사바세계는 몸으로 사는 건데, 그건 장애와 속박이다. 만나면 기분 나쁘게, ‘많이 늙었네요.’ 하는 사람도 있지만, 어떤 사람은 ‘건강해 보이시네요.’ ‘하나도 안 늙었네요.’라는 소리에요. 그건 거짓말이에요(웃음). 옳은 소리하면 기분 나쁘고, 거짓말하면 저 사람 거짓말하지하고 기분 좋지도 않더라고. 늙는 걸 싫어한다는 거죠. 그게 다 장애예요. 싫어하고 좋아하는 게 있으면 다 장애거든요. 그런데 일체 제불의 지혜가 자재해서, 무량수 무량광, 생로병사에 아무 장애가 없고, 해탈로서 자재하여, 三世無所礙(삼세에 무소애)라, 과거 현재 미래에, 오 만겁 전이나, 오 만겁 후나 세월에 전혀 구애되는 바가 없다. 그게 깨달은 분의 생애들이에요. 如是慧境界(여시혜경계)는, 이와같이 지혜광명, 원만보신을 얻은 지혜의 경계는 平等하야 如虛空(평등여허공)이로다. 평등해요. 차별이 많을수록 정신연령이 낮은 거예요. 너와 나는 다르다, 너는 나와 다르다. 다르긴 뭐가 달라요 똑같지. 옛날에 어떤 사람이 ‘국민은 개, 돼지다.’ 라고 했다가 굉장히 비난을 많이 듣는데, <기생충>이란 영화는 왜 항의를 안 하는지 모르겠어요. <기생충>도 개, 돼지나 비슷한 내용이에요. 별 얘기를 다하네요. 그게 다르다는 거예요. 그런데, 누군들 무장애, 무이상 두 가지 없는 경계에 올라간 걸 평등이라고 해요. 죽고 사는 게 두 가지가 아니고, 너와 내가 두 가지가 아니고,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두 가지가 아니고, 이것을 무이평등(無二平等)이라고 해요. 둘이 없는 평등이라. 사실 알고 보면 이루고 못 이루는 게 둘이 없어요. 똑 같아요, 이루나 못 이루나. 어린아이들이 내가 이걸 올려놓으려고 마음을 먹었는데, 엄마가 먼저 올려놓으면 자기가 다시 내렸다가 다시 올려놓아요. 자기가 상에 올려놓거나 아니거나 다를 바 하나 없는데. 어른들도 똑같이 그런 마음을 가지고 살아요. 내가 한 건 소중하고, 내가 안한 건 소중하지 않아. 그게 못 깨달은 미혹의 마음이에요. 한 단계 위에서 보면 이루거나 안 이룬 거나 다를 바 없어요. 그게 평등이에요. 如虛空(평등여허공)이로다. 평등이 허공과 같다. 그게 극락세계에요. 극락세계에 가려면 화엄경에도 청량스님께서 ‘3대 정기를 일으켜라’고 되어있어요. 3대 정기(精氣), 정자는 쌀 정자, 깨끗할 정자가 있는데요. 껍질 없는 쌀을 정미라고 하잖아요. 하얀 쌀. 깨끗할 정자, 좋을 정자. 정기는 좋은 기운. 좋은 기운이 3가지가 있다. 첫째는 토지정기, 흙에 좋은 기운이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항상 흙을 토지정기가 넘쳐나도록 좋게 만들어야 한다는 거지요. 지역에 따라서 특산물이 있는 것은 토지정기 때문에 그래요. 어느 지역에 가면 무가 잘 된다, 어느 지역에 가면 토마토가 잘 된다. 어느 지역에 가면 인삼이 잘 된다 등 있잖아요. 토지정기가 있는 거예요. 토지정기를 사람으로 보면 몸이에요. 몸에 병이 없고, 몸 세포가 아주 활발하고 건강하고, 뚱뚱하다고 몸 정기가 좋은 건 아니거든. 혈액이 건강하고, 골격이 건강하고 이런 거거든요. 그 다음은 중생정기. 중생들이 몸이 아주 강건하고, 깨끗하고, 수려하고, 이목구비 신체장엄이 됐을 때, 단엄(端嚴)하다고 해요, 단정하고 엄숙하고. 요즘에 성형수술을 많이 해서 예쁘게 만드는 게 단엄한 신체로서 중생정기가 되느냐. 그건 아니에요. 성형수술하고 아이를 낳고 보니까 아이 얼굴이 성형수술을 하기 전 얼굴과 똑같이 생겼대요. 그건 아니거든. 이 몸을 단정하고 엄숙하고 수려하게 만드는 것이 그게 중생의 정기다. 그리고 세 번째는 선법정기라고, 이 몸에서 좋은 공덕법이 자꾸 일어나도록 정기가 만들어져요. 이 몸이 건강하고, 이 몸이 단정하고 수려하다고 해도 몸에 착하지 않은 기운이 감돌면 안 되는 거예요. 절에서 왜 사찰정기가 항상 좋은가하면 늘 기도를 하니까, 목탁치고 기도하고 법문할 때 선법정기가 자꾸 성장을 해요. 또 우리자신도 좋은 일을 하고 봉사를 하고 뜻있는 일을 하면 이 몸에서 선법정기가 자꾸 성장을 해요. 그런데 이 몸을 게으르게 하고 불만을 갖고, 자기가 할 일을 다른 사람에게 미루고 하면 악법이 성장을 해요.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악법이 성장하면 못써요. 절대로 행복할 수도 없고, 절대로 만족할 수도 없고. 그런데 이 선법정기라는 게 그렇게 중요한 거예요. 선법정기라는 게 경 읽고 법문 듣고, 기도하고, 좋은 일 하고, 내가 할 일 내가 하고, 이러면 그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몸에서 착한 에너지가 자꾸 성장해서, 그런 사람들은 항상 자기 선법의 정기로 행복하고, 그런 사람이 아미타불을 만날 수 있고, 극락세계를 갈 수 있어요. 靈駕 至心諦廳 至心諦受영가 지심제청 지심제수法王法性(법왕법성) 實際中道(실제중도)는 법왕 법성의 실제중도는行行이 本處요(행행본처) 至至가 發處로다(지지발처) 가도 본처요 이르러도 발처이니安樂常樂(안락상락) 極樂世界(극락세계)이니 안락 상락의 극락세계입니다.今日靈駕(금일영가)께서는 速往하시고 速往하소서(속왕속왕) 영가께서는 속히 왕생하십시오.나무아미타불 우리의 본래 생명, 어머니 아버지에게 몸 받기 전부터 있었고, 이 몸이 다 한 뒤에까지 항상 있는 본래 생명을 법왕이라고 하고, 법성이라고 하고, 실제라고 하고, 중도라고 하는데, 어떠한 구애도 없고, 속박도 없어요. 그래서 行行이 本處요(행행본처), 가도 가도 항상 본래 자리에 있는 거예요. 화성을 가나 금성을 가나 원래 본래 자리에 있는 게 청정법신의 세계에요. 또 至至가 發處라(지지발처), 어느 곳에 이르러도 당도하고 이르는 곳마다 출가하는 곳이다. 이것이 안락이고 상락인 극락세계다. 편안하고 즐겁고 항상 즐거운 극락세계다. 오늘 영가께서는 절대 다른 데 가지 마시고, 극락세계로 속왕속와하소서, 속히 가시고, 속히 가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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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음식> 향적세계 중급반 강의
주지스님 2019-06-26
부처님 당시, 남방불교, 초기불교에서는 단체생활이 없어서 걸식을 했었어요. 그러다 중국에 와서 단체생활을 하면서 백장스님의 일일부작이면 일일불식(一日不作一日不食)이라,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밥 먹지 않겠다.’는 말이 나왔어요. 사실 밥 먹는 게 굉장히 중요해요. 그래서 저희들은 절집에 들어오면 채공, 공양주부터 살아요. 그래서 채공을 잘 살면 지혜가 생긴다고 했습니다. 얼렁뚱땅 살면 지혜가 생기질 않아요. 음식은 수학공식이 아닙니다. 정해진 공식이 없어요. 다 응용입니다. 예를 들어 두부를 가지고 수십 가지를 만들 수 있고, 무 가지고도 수십 가지를 할 수 있어요. 그래서 채공은 머리를 짜내서 지혜롭게 계발을 해야 돼요. 똑같은 음식을 상에 올리면 가족들이 좋아해요? 안 좋아하죠. 그래서 채공을 하면 지혜가 생기고, 공양주를 살면 공덕(功德)이 생겨요. 그래서 채공, 공양주를 오래 살았다고 하면 그 사람은 업장이 다 소멸된거예요. 그래서 밥 먹는 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밥이 그대로 생명입니다. 밥을 1주일만 안 먹으면 돌아갑니다. 남자는 7일간 안 먹으면 가고, 여자는 조금 독해서 9일까지 간다고 합니다. 밥이 생명이기 때문에 음식은 날마다 약으로 먹는다, 식약동원(食藥同源)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음식은 삶의 바탕이고, 사람의 근본입니다. 우리는 잘 먹으면 잘 산다고 해요. 우리는 자연을 닮아서, 돌아갈 때는 지수화풍, 자연으로 돌아갑니다. 음식을 먹는 것이 바르게 먹어야지 몸이 반듯합니다. 또 몸이 반듯하니까 행동도 바르게 됩니다. 음식을 함부로 먹으면 행동도 망가집니다. 그래서 먹는 게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내 행동이 반듯해야 모든 게 반듯합니다. 이 몸의 행동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마음에서 나옵니다. 마음을 잘 다스려야 몸도 마음도 맑아지고 깨끗해집니다. 몸과 마음은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우리가 보통 몸의 주인은 마음이라고 하죠? 마음의 스승은 몸입니다. 몸과 마음을 함부로 하면 안 돼요. 그래서 몸을 키우는 것은 음식이기 때문에, 음식을 잘 먹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전 사람들은 食爲先 先食治 後藥治이라고 했습니다. 먹는 게 가장 우선이에요. 그래서 식위선(食爲先)이라고 하고, 몸이 아프면 제일 먼저 음식으로 다스려요. 그 후에 약으로 다스려요. 음식으로 다스려서 나아지지 않으면 약으로도 나아지지 않는다고 했어요. 한 방울의 물에도 천지의 은혜가 깃들어 있고, 한 톨의 쌀알에도 만인의 노고가 담겨 있어요. 음식을 먹을 때, 무엇을, 어떻게, 언제, 어디서, 얼마만큼을 생각해야 합니다. 이것은 수학공식이 아니에요. 지금까지 제가 강의를 하면서 ‘이렇게 하면 좋겠다.’해서 만든 거예요.무엇을? 자연식을 드셔야 해요. 자연에서 나오는 음식 재료.어떻게? 조리법언제? 제철음식어디서? 가족과 함께. 가족과 함께 즐겁게 먹으면 세레톤이라고 하는 화학반응이 나와 몸과 마음도 건강하게 하고 면역력을 키운다고 해요. 그래서 기분 좋은 사람과 같이 먹으면 기운이 나죠. 그래서 가족과 함께, 지인과 함께. 그렇지 않으면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그러면 소화도 잘돼요. 기분 나쁜 사람과 먹으면 소화도 잘 안 돼요. 현장에서 배운 음식은 마을에서 배운 음식과 달라요. 마을에서는 유명한 셰프에게 가서 배우면 되잖아요. 왜 절에서 음식을 스님에게 배우려고 하는가? 마음을 배우셔야 해요. 마음을 넓게 써야하고, 긍정적인 마음을 써야 되고, 좋은 마음을 내는 사람이 좋은 음식을 만들어요. 화가 나죠? 싸움을 했죠? 타거나 짜지 않으면 음식이 맛이 없어요. 음식은 맛으로 먹어요. 마음을 먹는 것도 좋은데, 맛이 없으면 못 먹어요. 얼마만큼? 소식(小食). 조금씩 적당하게. 이렇게 먹는 것이 음식을 먹는 가장 바람직한 방법입니다. 산사음식은 수행식이고, 자연식이고, 건강식이에요. 음식의 3가지 요소 아시죠? 청정, 유연, 여법입니다. 거기다 덧붙이면 담백, 간소. 첫째, 청정, 깨끗해야 되고. 음식점이 더러우면 맛있을 수가 없어요. 아무리 좋은 음식이래도 깨끗하지 않으면 식감이 떨어져요. 둘째, 유연, 삶을 건 삶고 부드럽게 하고, 셋째, 여법, 양념이 들어가야 할 때는 들어가야 하고. 음식만 이런 게 아니고, 우리 몸도 청정, 여법, 유연해야 되요. 마음이 맑지 못하면 청정치 못하다고 하죠. 또 기복이 심하면 유연치 못하다고 해요. 법답지 못한 것은 여법치 못하다. 그래서 절에서는 여법한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겨요. <법답다, 여법하다> 비슷한 말이 <여일하다, 한결같다, 여여하다>, 어제나 오늘이나 똑같은 마음이 여여한 마음이고 여일한 마음이에요. 모범적인 행동으로 반듯한 걸 여법하다고 해요. 그래서 음식을 만드는 사람은 몸도 마음도 깨끗하고, 부드럽고 여법해야 해요. 음식만 그런 게 아니에요. 모든 걸 다 마음을 보셔야 해요. 자연에서 문화로 변모하는 과정을 요리라고 해요. 거기에 절에서의 음식을 절집 음식, 사찰음식이라고 해요. 요리는 기교를 많이 써서 색감도 있고, 담아내는 것도 산해진미가 다 들어갑니다. 하지만 산사에서의 음식은 소박하고 담백하고, 자연적인 음식입니다. 담백한 맛이 변함없는 맛, 순수한 맛, 맑은 맛이에요. 이런 음식을 오늘 한 번 만들어 보는 거예요. 여름에는 땀을 많이 흘려 좀 짭조름한 맛을 느껴야 되겠지요. 그래서 장떡, 깻잎장떡, 방아장떡 등이 있는데, 방아는 마을에서 구하기가 어렵고, 민트, 허브 같은 성질이 있어요. 그래서 예전의 어른스님들은 방아를 드리면 최고의 음식이라고 하셨어요. 호박, 당근, 감자는 다 땅에서 주는 선물이에요. 감자는 자연에서 주는 가장 좋은 음식이에요. 지난 번 고급반은 알감자조림을 했는데, 오늘은 감자를 가지고, 깍둑깍둑 썰어서 즉석에서 해 먹는 음식을 만듭니다. 저는 냉장고에 저장해 놓고 먹는 음식을 제일 싫어합니다. 음식 마일리지란 말 들어보셨어요, 텃밭에서 바로 가져다 먹는 음식을 말합니다. 싸다고 많이 사서 냉장고에 두는데, 냉장고 속에서도 다 썩어요. 우리 몸의 온도가 1도만 내려가도 암에 걸릴 확률이 70-80%예요. 내 몸의 온도를 올려야 되요. 적정온도만 가지고 있어도, 병에 걸릴 확률이 낮아집니다. 그래서 저는 냉장고에 비축해서 오래 놔두고 내일 모래까지 먹자는 건 반대입니다. 즉석에서 밥을 하면 음식도 맛있고, 그게 음식 마일리지에요. 싸다고 해서 자꾸 갖다놓고 먹으면 배탈 납니다. 여름일수록 이열치열이란 말 들어보셨죠. 땀을 많이 흘리므로 염분이 좀 들어가야 해요. 그래서 오이장아찌(오이지), 무장아찌(무지) 드시잖아요. 그래서 여름에는 좀 짭조름하게 드셔야 땀을 많이 흘린 걸 보충할 수 있어요. 서양의 발효음식은 뭔지 아세요? 치즈, 포도주 같은 거잖아요. 우리나라의 발효음식은 된장, 고추장, 간장, 저장음식들. 그게 다 좋은 음식들이에요. 양념이란 말은 약념((藥念 약처럼 생각해서)에서 변하여 나온 거예요. 음식 못하는 사람이 양념을 많이 칩니다. 적당히 넣어야 합니다. 아까 여법이라고 했죠. 여법이 적당한 겁니다. <최고의 양념은 마음입니다.> 그래서 마음을 아름답게 가지고 음식을 잘 만들어서 집에 돌아가셔서 실습하여야겠죠. 오늘 재료는 다 집에 가서 해보기 좋은 재료들이에요. 깻잎도 그렇고, 오늘은 깻잎배무침을 해보려고 해요. 그래서 매실청 조금 넣고, 식초 넣어 새콤달콤하게 만들어도 좋지만, 배의 부드러운 맛으로 아주 맛있습니다. 잘 먹으면 잘 산다. 오래 살 수 있어요. 오늘 진관사에서 마음을 배우면서 음식도 잘 배워서 돌아가셔서, 가족 건강, 모든 사람의 건강을 위해서 잘 하셔야 합니다. 공양송 한번 해봅시다. 합장하고요. 이 밥은 숨 쉬는 대지와 강물의 핏줄, 태양의 자비와 바람의 손길로 빚은 모든 생명의 선물입니다. 이 밥으로 땅과 물이 나의 옛 몸이요, 불과 바람이 내 본체임을 알겠습니다. 이 밥으로 우주와 한 몸이 됩니다. 그리하여 공양입니다. 온 몸, 온 마음으로 온 생명을 섬기겠습니다. 우리 몸은 어디로 돌아간다고 했지요? 자연으로, 지수화풍으로 돌아가요. 숨 쉬는 대지와 강물의 핏줄 등등 다 지수화풍입니다. 온 몸, 온 마음으로 밥이 곧 생명이라고 했죠, 그래서 이 생명을 다 받들겠습니다라는 뜻이에요. 그래서 음식 하나도 허투루 하면 안 되겠지요. 일미가 칠근(一米七斤)입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중요해요. 쌀 한 톨의 무게도 7근이 되는데, 그걸 수챗구멍에 버려보세요. 제석천왕이 썩을 때까지 합장하고 눈물을 흘리며 계세요. 절대 음식은 함부로 다루면 안 돼요. 1가마에 400백 만 개 쌀알이 담겨있대요. 발우가 있습니다. 그 속에 공양=행복, 물=기쁨, 작은 발우에 담은 밥에도 행복하고, 한 잔의 차에도 기쁨이 다 들어있는 거예요. 한 방울의 물에도 천지의 은혜가 깃들어 있고, 한 톨의 씨앗에도 만인의 노고가 담겨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오늘 강의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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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음식> 향적세계 고급반 강의
주지스님 2019-06-20
< 음식은 생명이다.> 어떤 마음으로 음식을 만들고, 어떤 마음으로 음식을 대하고, 어떻게 해서 음식이 우리의 건강을 도와주나, 이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예요.그래서 저는 기교, 요리, 재능 다 중요하지만, 살아가면서 마음을 어떻게 쓰느냐가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저희는 처음에 출가하면, 채공공양주부터 삽니다. 채공 석 달, 공양주 여섯 달, 더 많을 때는 1년 넘게 살았어요, 68년도에는.그런데 지금은 공양주, 채공을 절에서 다 따로 두다보니까 스님들이 기도를 한다든지, 부전을 산다든지 하는데, 그래도 기본은 공양주, 채공이에요.준비하고, 만들고 먹고 정리하는 과정이 전부 수행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먹고 마시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음식(먹고 마시는 것)은 삶의 기본이고 생활의 바탕입니다. 저도 학교 다닐 때부터 먹고 마시는 걸 좋아해서 음식 만드는 걸 좋아했어요. 그러다보니 음식 만든 지 50년이 넘었어요. 食爲先 先食治 後藥治 食爲先, 먹는 것이 가장 먼저고, 가장 중요한 것이 먹는 것입니다. 先食治, 먹는 것으로 다스려서 낫지 않으면, 後藥治, 나중에 약으로 다스린다.음식으로 못 다스리면 약으로도 다스리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먹는 게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 몸은 나중에 죽으면 어디로 간다고 하죠?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로 가죠. 내 몸은 자연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뼈와 살은 땅으로 가고, 눈물, 콧물은 물로 가고, 따뜻한 기운은 불로 가고, 호흡은 바람으로 가고. 그래서 내 몸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 자연(自然)이에요. 그래서 <사찰음식은 수행식(修行式)이어야 되고, 자연식(自然式)이어야 되고, 건강식(健康式)>이에요. 음식은 자연스러워야 합니다. 음식 못하는 사람이 양념을 많이 칩니다. 양념이란 말은 약념((藥念 약처럼 생각해서)에서 변하여 나온 거예요. 항상 이 음식을 먹으면 우리 가정이 편안하고, 내 몸이 건강하고, 모든 사람이 음식을 먹으면 건강해야 하는데, 거기에 바탕은 마음입니다. <최고의 양념은 마음입니다.> 그래서 몸도 마음도 바른 사람이 음식을 잘 만드는 겁니다. 싸움해보세요. 음식이 짜지지. 화가 나면 음식이 타요, 불을 조절을 못하니까. 열 받으니까. 음식을 만드는 사람은 칼, 물, 불을 다루기 때문에 여일하지 못해요. <如一하다, 如如하다>, 여일하다는 한결같다는 말이고, 여여하다는 똑같은 마음. 어제 마음 똑같고, 오늘 마음 똑같고, 내일 마음 똑같은 마음이 되어야지, 항상 그 사람이 그 사람이고, 바로 그게 부처님 마음이에요. 중생은 변덕이 심하고, 변화가 심하지만, 부처님은 똑같아요. 그래서 우리가 여래라고 하죠. 여여하게 오셨다. 여래, 응공, 정변지, 명행족, 선서, 세간해, 무상사, 조어장부, 천인사, 불세존, 여래십호가 있잖아요. 항상 여일한 사람이 되어야 하고, 기복이 없어야 해요. 그날 식당이 쉬었다고 하면 쉐프가 화가 났다는 겁니다. 그럼 음식이 맛없어요. 여러분의 마음자세가 수행자 같은 마음, 자연스러운 마음, 건강한 마음이 되어야지만, 음식을 만들어도 맛있어요. 음식은 무엇으로 먹을까요? 맛으로 먹지요. 맛이 없으면 안 먹어요. 절에 가서 맛있게 먹은 뒤 집에 가서 해먹고 싶으시죠? 절집음식은 담백하고, 오신채( 파,마늘, 양파, 달래, 부추 : 구구단 외우듯이 외워서 바로 나와야 해요.)를 안 써서 진중합니다. 양파는 생으로 먹으면 성질이 나고, 익혀 먹으면 음심이 동해 바람이 납니다. 절에서는 특히 금지사항이에요. 어떤 때는 새벽에 염불할 때도, 템플 오는 사람들이 들어오면 악취가 나서 우리들은 문을 다 열어놔요. 그래서 이런 음식은 먹질 말아라. 하지만 이건 기호식품이기 때문에 저희들은 완전히 먹지 말라고는 안합니다. 적당히 먹어라. 스님들은 금기사항이에요. 그런데 70이 넘으면 약으로 먹어도 가하다는 게 나와요. 산사(山寺)음식은 사찰(寺刹)음식이라고 해도 되는데, 진관사 음식은 의례음식으로부터 시작되었어요. <의례는 공덕의 음식이다. 화합의 음식이다. 나눔의 음식이다(모든 음식을 만들어 나누기 때문에). 자비의 음식이다(우리가 살생을 안 하잖아요). 자연을 담은 마음이다.> 그러니까 쌀 한 톨이라도 아껴야합니다. 일미가 몇 근인지 아세요? 일미가 칠근(一米七斤)입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중요해요. 저희는 환경운동처럼 발우를 다 닦아서 먹잖아요. 고춧가루가 아귀의 목에 들어가며 불이 나는 것처럼 아파 죽어요. 그래서 깨끗하게 부셔 먹어요. 쌀 한 톨의 무게도 7근이 되는데, 그걸 수챗구멍에 버려보세요. 제석천왕이 썩을 때까지 합장하고 눈물을 흘리며 계세요. 절대 음식은 함부로 다루면 안 돼요. 다 농민들의 피와 땀입니다. 한 방울의 물에도 천지의 은혜가 깃들어 있고, 한 톨의 쌀알에도 만인의 노고가 담겨 있는데, 1가마에 400백 만 개 쌀알이 담겨있대요. 그러니까 음식도 깨끗해야 되고, 음식의 3요소는 청정, 유연, 여법인데, 몸도 마음도 음식도 깨끗해야 되요. 채소만이 아니라 내 몸도 깨끗하고 정갈하게 해야 되요. 몸도 마음도 물질도 청정, 유연, 여법해야 된다는 말이에요. 오늘 마음을 깨끗하게 하면서 유연 여법하게 음식을 만들면 최고의 맛입니다. 부처님의 최고의 맛은 제호(醍醐)의 맛입니다. 우리 공양간이 제호의 향기예요. 우유를 발효시켜 만든 것, 우리나라의 최고의 발효식품을 장류입니다. 우유를 삭혀서 만든 최고의 맛을 제호의 맛이라 합니다. 부처님의 일미의 맛을 제호의 맛이라고 합니다. 최상성의 법은 제호의 법이고, 제호의 맛이고, 감로의 맛은 감로수, 최고의 단맛이고, 향적주중상출납(香積廚中常出納), 향적세계는 향기가 나는 세계예요. 제호의 맛이나 감로의 맛이나 향적의 맛이나 다 똑같은 삼위일체 일미예요. 우리가 보통 보살, 성문, 연각을 삼승이라고 하죠. 삼승이 회귀하면 일불승법이에요. 그렇듯이 제호의 맛이나 감로의 맛이나 향적의 맛. 그래서 오늘은 제호의 맛도 내야 되고, 감로의 맛도 내야 되고, 향적의 맛도 내야 되요. 누가 제일 잘 내나 볼 거예요. 오늘 향적세계에서 잘 배운 후 나들이 겸 진관사에 오셔서 오늘은 저한테 이런 걸 배워야합니다. 봄여름가을겨울이 따로 있죠. 봄에는 새싹이나 순을 따요. 봄에 3가지 중요한 채소가 있어요: 쑥, 두릅, 엄나물. 여름에는 잎, 가지를 먹고, 가을에는 뿌리, 감자, 무, 겨울에는 저장음식, 배추 등을 먹어요. 여름에는 땀을 많이 흘리므로 좀 짭조름하게 드셔야 되요. 흘린 땀을 보충해야 되니까. 그래서 예전에 오이지, 짠무를 준비해서 반찬이 없더라도 찬물에 밥을 말아 오이지와 드시고, 아니면 고추를 장에 찍어 먹으면 아주 담백한 맛이에요. 반면 겨울에는 추우니까 열이 나게, 김치찌개라든지 매운 찌개 드시잖아요. 종류가 달라요. 저는 절대 저장해서 음식을 드시지 말라고 합니다. 장에 가서 바로바로 사와서 드시지, 싸다고 잔뜩 사서 냉장고에 두면 냉장고 속에서도 상해요. 제일 나쁜 음식이 냉장고 음식이에요. 온도가 1도만 낮아도 암에 걸릴 확률이 70-80%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찬물을 자꾸 드시지 말고 적당한 온도의 물을 드십시오. 음식 만들 때도 텃밭에서 바로 따서 먹는 음식이 최고의 음식이에요. 그래서 절대로 저장해서 드시지 말자. 바로 조리해서 바로 먹고, 음식은 최고로 맛있는 게 마음도 중요하지만, 바로 그때그때 만드는 것이 최고의 맛이에요. 두부도 조려놨다가 이틀 후에 드셔보세요. 그게 맛있나. 식은 밥도 도움이 안 돼요. 바로 한 뜨끈한 밥을 드셔보세요. 바로바로 해서 드시는 게 최고의 맛입니다. 사찰음식이 어떤 건가 대충 아시겠죠. <자연식이고 건강식이고 수행식이다.> 우리가 도를 이루기 위해서 먹는 게 수행식이에요. 그리고 절에서 수행자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다 같이 먹는 게 바로 산사음식입니다. 최고의 담백하고 맛있는 음식, 자연식, 건강식, 수행식이다. 음식 만드는 자세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마음입니다. 오늘 강의 여기서 마치겠습니다.